구석기 시대에서 '마술'이라는 것은 종교적인 행위와는 달랐다.

 

 

 

기도라는 것은 없고, 신성한 힘이나 존재를 숭배하지도 않았다.

 

어떤 영적 존재들에 대한 신앙 같은 것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구석기 시대에는 종교적인 그 무엇인가는 없었던 듯 하다.

 

 

 

 

 

구석기 시대의 마술적 행위란 신비스러울 것 없는 기술이자 사무적인 활동이었다.

동굴벽에 동물 그림을 그린 것은 짐승이 그 속에 걸려들게 되어 있는 '함정'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짐승이 걸려든 함정이었다.

 

 

구석기 시대의 그림은 대상의 재현이자 대상 그 자체며, 소망의 표현임과 동시에 소망의 달성이었기 때문이다.

 

구석기 시대의 이 '사냥꾼 예술가'는 그림을 그림으로써 실물 자체를 소유한다고 믿었고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려진 사물을 지배하는 힘을 얻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림 속 동물을 죽이면 실제의 짐승도 죽게 마련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술'이다. 

철저히 실제적인, 실용적인 의미의 마술이 되었다.

 

 

 

이들의 마술은 결코 상징적인 대체행위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며 직접적인 행동이었다.

동굴 벽에 동물을 그렸다면 진짜 동물을 한마리 만들어낸 것이라 믿었다.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허구와 가상세계, 현실을 이분법적으로 구별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인류학자 레비브륄의 책에 나오는 어떤 쑤(Sioux)족 인디언의 사고방식과 같았다.

어떤 탐험가가 인디언의 영역에 가서 들판에 있는 소들을 그림으로 그려갔다.

그러자 인디언이 '저 사람이 우리네 들소를 여러마리 자기 책에 넣어간 것을 나는 안다'는 말을 했다.

 

 

 

이들은 예술의 세계가 일상 현실세계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예술세계과 현실세계를 철저히 분리시키는 세계관이 지구를 지배하게 되지만 이분리시키지 않는 경향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를테면 피그말리온(Pygmalion)이 자기가 조각한 여성에게 사랑을 느꼈다

또 동양의 전설 중에는 그림에 그린 꽃에 새나 나비가 날아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림 속의 어떤 인물이나 동물이 문을 통해 바로 실제 삶의 세계 속으로 걸어들어오는 이야기들이다.

 

 

 

 

예술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사라진다.

그러나 역사시대에 접어들고 나서는 이런 경계선은 명확하고, 뚜렷해진다.

 

 

 

역사시대에서 세계를 나누는 경계선을 아주 뚜렷하게 정했기 때문에, 또 지금 우리는 역사시대에 살고있기 때문에 

그 반향으로 구석기시대의 회화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구석기 시대의 회화에서는 그리는 모든 것들이 명명백백한 하나의 사실이며 예술이 아직 전적으로

'실생활'에 봉사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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